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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은 왜 어린이날을 만들었나?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던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들과 더불어 어린이를 비하한다고 논란이 되는 '초딩','O린이'라는 표현이 서슴없이 사용되는 한국에서 어린이날이, 심지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어린이날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린이날은 사실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다. 어린이날 하면 떠오르는 소파 방정환. 방정환은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손병희의 사위다.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교육가였던 그는 3.1 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통치'라는 명목 하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내선일체(內鮮一體)’ 사상 교육(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뜻,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조선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조선을 착취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구호) 이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대항하여 나온 것이 '어린이'라는 개념이었다. 방정환은 12세 미만의 아동들도 어른들과 대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하며, 자립심과 민족적 자각을 일깨워 일제의 정신적인 침탈을 막아야 한다고 주창했다.

 어린이들에게 민족적 독립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방정환은 전국으로 1000회 이상 아동들을 위한 구연동화를 다녔는데 일제의 고등계 형사들은 그를 감시하기 위해 뒤따라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많은 일제 형사들은 그의 구연동화를 듣다가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 

 1914년 최남선에 의해 처음 쓰여졌지만, 1921년 어린이라는 단어를 공식화하며 1923년 5월 1일 한국 최초의 어린이 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이후 1925년 6월 1일에 '국제어린이날'이 제정되었고, 일본도 2차 대전 이후 한국을 따라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기념하고 있다.

 자신의 호를 잔 물결. 자그마한 물결이란 뜻의 小波로 지은 방정환.그는 죽기 며칠 전 부인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부인 내 호가 왜 "소파(小波)"인지 아시오,  나는 여태 어린이들 가슴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일을 했소, 이 물결은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요, 뒷날에 큰 물결 대파가 되어 출렁 일 터이니, 부인은 오래오래 살아서 그 물결을 꼭 지켜봐 주시오" 

 비록 방정환은 31세의 젊은 나이에 과로로 인해 세상을 떠났지만, 일제로부터 아동들을 보호하려고 했던 그의 노력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